특전사령관 정호용과 11여단장은 자기 부하들을 북한군 총뿌리로 내몰았고, 자기 부하들이 북한군의 90미리 무반동총 사격과 대전차 지뢰 대인지뢰 수류탄 수십발 공격에 허리가 잘려 나가고 신체가 산산조각 나는 처참한 죽음으로 9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36명이 불구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이미 국방부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 교도대대 매복조가 북한군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공적조서는 교도대대와 오인사격이 아닌 시민군과 오인사격이라고 조작해 놓고 11여단 헌병대장과 최웅 장군이 사인을 한 후에, 북한군 사망자를 동작동에 매장할 수가 없어서 지나가는 통합병원 방위병을 쏴 죽여 전교사 소속으로 위장해 대리매장을 해 비석숫자를 맞춰 놓아 11여단 전사자 가족들과 전우들이 매년 제사를 지낼 때도 감쪽같이 속았던 것입니다.
이로서 518은 육사 출신 청죽회 회원들이 김대중과 저지른 것이 확인되었고, 북한군 600명이 남파되어 김대중 여단과 청죽회 장군들과 예하부대를 지원했던 게 확인되게 되었습니다.
도청앞 집단 발포와 교도소 습격 피살로 사망한 연고대생/북한 특수군 430구의 시신을 처리(22일과 23일에 걸쳐 시신 처리)한 후,
24일 송암동에서 11여단 1,000여명의 특전사 병력을 교도대대 1개 분대를
교수부장인 장군이 교도대대 중령에게
90미리 무반동 총 2정을 휴대한 1개 분대를 11여단에서 갓 전입온 대위를 분대장으로 해서 출동시켜 매복했다가 접근하는 11여단을 공격해 오인사격으로 위장하고
~~ 이는 교수부장 (혹은 CAC 사령관)과 11여단장이 짜고 선두로 나아가는 62대대 병력(11여단장 에 의해 작전 참모 지시에 의해 62대대가 선두에 배치 하도록 명령
그 선두에 배치한 4지역대를 모두 전멸시키려는 저들의 보복작전 덫에 걸리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신동국 중위와 4지역대 전원을 전멸시키고자 했던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설사 환자가 생겨 선두 출두하지 못하고
그 대신 63 대대가 먼저 출동하는 바람에 63 대대 수많은 병력이 희생하게 되었던 것이다~~